LA에서, 사랑하는 아내에게!
서신칼럼연설 2009/03/22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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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아내에게!

아내여!
오늘이 미국에 온지 꼭 300일째 되는 날입니다.
우리가 300일동안 떨어져 살았구려,

아내여, 사랑하는 아내여,
오늘이 미국 대륙을 횡단한지 열흘째 되는 날이며,
워싱턴에서 LA까지 무사히 횡단을 마친날입니다.

보고 싶은 당신,
또한 오늘은 LA에서 2009년 WBC에서
우리나라가 베네수엘라를 10:2 로 완승해서 결승전에 진출하게 되었습니다.
대륙횡단을 마치고 LA에 도착하자 마자, 곧장 경기장으로 달려가서 응원했습니다.
참으로 기쁜 일입니다.

사랑하는 당신,
지난날 민주화 운동시절 내가 감옥에 가 있거나,
수배를 당해서 집을 비울 때 말고는 이번이 가장 긴 시간을 집 떠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고은, 은별, 민호하고도 가장 오래 떨어져 있었구려.

어제는 첫 외손자인 라온이 첫 돌이었지요, 
전화라도 할려고 했는데 마침 그랜드캐년 지역이라 통화권 이탈로 전화도 안되었습니다.
정말 미안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첫 돌을 잘 지냈는지, 많이 들 보고 싶군요.

사랑하는 아내요!

돌이켜 보면, 우리가 떨어져 산지가 이번이 처음도 아니고,
자식들의 돌을 챙겨주지 못한것도 한두번이 아니지요.
자식들의 돌은 커녕 자신의 생일도 모르고 지낸지가 어디 한두번입니까!

1971년, 10월 9일 우리가 결혼할 때부터 당신은 평범한 생활을 포기했을 것입니다.

결혼당일 수배가 내려서, 겨우 결혼식만 올리고,
그 다음날부터 나는 도망 다니고,
당신은 불광2동 산밑에 얻어 놓은 단칸 신혼방에
기관원들이 우리도 덮어보지 못한 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으니,
어찌 평탄한 결혼 생활을 바랐겠습니까?

그러나, 그 긴 세월을 잘 참고, 잘 보살펴 준 당신께 진정 감사하고,
고마움을 낯선 미국에서 이제서야 전하고 싶습니다.

내가 세번째  감옥을 나왔을 때, 집을 찾아 갔는데,
이사를 가버려서 오전 내내 집을 찾아 해메다가 저녁때 집에가니, 
역촌동 길가에 조그만 바느질 방을 채려 놓고,
내가 나오는지도 모르고 일만 하던 당신 모습을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어린아이들과 중증치매에 걸리신 장인 어른을 모시고,
하루를 살아가기가 너무나 힘든 당신 모습을 보고,
하염없이 흐르던 눈물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내가 잘 때가 없어서 동네 독서실에서 자고, 라면 끓여 먹으면서 쓴 책이
“해방후 한국 학생 운동사”였으며, 마침  인세를 얻어서 9평짜리 연립 주택을 장만 하는데,
돈이 부족해서 가람이 아버지가 한미은행에 보증서서 돈을 빌려주어서 장만 했던
그집이 구산동 거북 연립이었지요.

그러나, 그 집도 경찰이 허구헌날 지키는 바람에,
동네에서 살수 없을 정도로 난처했던 지난날들이 오늘따라 세삼 그리워 지는군요.

그때는, 군사독재가 끝나고, 민주화만 되면 모든 것이 잘 될줄 알았는데,
군사 독재가 끝난지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도,
아직도 나라안에 부정과 부패가 끊이지 않고 있으니,
정녕 우리의 젊은 날은 헛된 꿈이었나요.

사랑하는 당신, 오늘 LA에서 이렇게 당신께 편지를 쓰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의 처지가 별반 나아지지 않았기 때문이며,
300일이나 외국에 나와 있으면서도 한시도 마음이 편치 않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사랑하는 당신,
18년간이나 중증치매에 걸린 장인을 모시면서,
우리가 겪었던 수많은 사연을 어찌다 말할수 있겠습니까?

국회의원이 되면 뭐가 좀 달라질 줄 알았는데,
살림이 쪼들리기는 마찬가지 였고, 어떤 이들은 우리가 살아가는 모양을 뻔히 보면서
평창동으로, 강남으로, 일산으로, 돈벌어 이사 갔다고,
거짓 소문을 퍼트리고 다닐 때, 당신의 심정이 어떠했겠습니까.

그러나, 세번씩이나 국회의원을 당선 시켜주신 지역주민들이 너무 고마워서,
어께 한번 제대로 못 펴고, 살아야 했던 지난 시절도 이젠 오히려 추억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우리를 도와주었던 많은 주민들께
우리가 18대에 떨어졌다고 해서 그들을 조금이라도 잊어서야 되겠습니까.

10여년을 감옥살이 했으니깐,
10여년을 국회의원한걸로 생각하면, 마음이 편하지요. 원래 우리야 빈손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지금은 23평짜리 단독주택도 있고,
시집간 딸들과, 든든한 아들도 있지 않습니까.

사랑하는 당신,
이제 집으로 갈려고 합니다.
워싱턴에서 LA까지 왔습니다.

서울에 지금쯤 개나리도 피었고, 진달래도 피기 시작하겠지요,
그 꽃이 지기전에 만날수 있으리라 봅니다.

결혼해서 지금까지 고생을 참으면서 뒷바라지 해준 당신께,
이제는 늘 고마운 마음만 갖고 살기로 하겠습니다.

언젠가 당신이 “남편의 생각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나는 내 생활이 고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나를 잡으러 온 기관원에게 당당하게 말하더라는 말을
나를 잡으러 다니던 그 기관원에 듣고, 나는 더없이 당신이 자랑스러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고생한다”고 해도 정녕 당신은 고생이 뭔지 모른다는
그 마음 씀이 그나마 오늘 이 정도로 우리가 살게 된 것 이라고 늘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 귀국 하면, 다시는 나로 인해서
가족이 해어져서 살아야 하는 일은 없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동안, 가정을 잘 꾸려준 당신께 진심으로 감사한 마음을 글로서나마 전하며,
만날 때까지 가족 모두 잘 지내기를 바랍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2009. 3. 21.
LA에서 재오 드림


2009/03/22 22:18 2009/03/22 2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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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1. 강상기 2009/04/07 16:44  댓글주소  수정/삭제  댓글쓰기

    귀국해서 반갑습니다
    국가를 위해서 펼치고 싶던 일을 펴지 못하고 망명객처럼 외국에 머물다 다시 가족과 함께 오붓하게 지내실 수 있어 그나마 다행입니다. 정치는 생물과 같다고 하는데 좋은 뜻을 펼때가 있겠지요.그동안 생각을 많이 정리하고 에너지도 비축했을 것이니 잘하시리가 믿습니다. 특히 남북문제에 대한 전향적인 대처가 있었으면 합니다. 큰 역할을 잘 해서 현정부가 제대로 잘 가도록 중심을 잡아주었으면 합니다. 이재오님께서 그동안 투쟁해서 이루어낸 민주주의가 많이 훼손되었습니다. 아내에게 보낸 편지가 감동되어서 한 말씀 올렸고 그렇게 가족사랑하듯이 국민을 바라보고 정치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재오님의 앞날과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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