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 집나가면 객지라, 먹는것이 고통이다.
영양읍에 고등학교를 다닐 때다.
토요일이면 자취 보따리를 들고 80리길을 걸어서 집으로 온다.
빨래감, 쌀자루, 반찬그릇 등을 챙겨서
피난 봇짐처럼 짊어지고 소갯재를 넘어 온다.
토요일이라 학교에서 수업이 끝나고 자취 보따리를 대충 싸면 오후2시쯤 된다.
그때부터 행군이 시작된다. 현내를 건너 깊은 산길로 접어든다. 그렇게 해서 집에 오면 저녁 8시, 9시가 된다. 식구들은 농사일을 끝내고 저녁을 먹고 설거지까지 끝내고 사랑방과 안방에서 휴식을 취하고, 형님들은 동네 놀러 나가고 없다.
가물거리는 호롱불(호랑불)을 보고 “어메 내 왔다”하면 어머니는 창호지 구멍이 숭숭 난 문을 열고 한걸음에 방에서 나와 “아이고 집 나가면 객지라는데 고생 했재. 밥은 잘해 묵었나”고 나를 어루만져 주신다.
예순이 넘어서 미국에 와서 왜 그때 생각이 나는지...
아무래도 객지라는 것 때문이리라.
′객지′ 다음에 어머니가 말씀 하신 ′밥′이다.
그렇다 객지에서 제일 고통스러운 것은 역시 밥이다.
하루세끼 식사 해결이 제일 고통스럽다.
하루는 문득 찹쌀떡이 먹고 싶었다.
서울에 있을 때도 찹쌀밥을 좋아했다.
어렸을 때 시골에서 찰밥을 먹을 때면 음력 보름 밖에 없었다.
나는 찰밥, 찹쌀죽 이런 것을 많이 좋아했다.
시골에서는 그만큼 먹기 어려웠다.
찹쌀떡을 살 수 있는 곳을 몰랐는데
같이 있는 주박사가 한국인들이 많이 이용하는 슈퍼마켓에 가면
혹시 있을 것 같다고 하면서 집을 나섰다.
한 시간 가량 걸려서 주박사가 기름에 튀긴 찹쌀떡을 10개 사왔다.
나는 너무 먹고 싶던 차라 3개를 먹었더니 배가 부른 것 같아서
나머지는 아껴 먹어야지 하고 챙겨두었다.
다음날은 학교에 일찍 가야하고, 점심 저녁은 밖에서 먹게 되었다.
그 다음날 아침에 생각이 나서 나는 찹쌀떡을 찾았다. 그런데 이게 왠일인가?
아껴둔 것이 잘못인지 딱딱하게 굳어서 그냥 먹을 수가 없었다.
나는 크게 낙담 했다. 서너개 먹고 출근 하려고 했는데, 못 먹게 되었으니 너무 아까웠다.
한참 동안 굳고 식어버린 찹쌀떡을 물끄러미 보고 있었다.
갑자기 단팥죽 생각이 났다. 겨울이면 ′찹살떡′ ′단팥죽′ 하고 외치며 서울의 낯선 거리를 다녔던 대학 들어가기 전 서울 생활이 생각났다. 나는 그것을 물을 붓고 끓이면 단팥죽이 될 것 같은 생각에 냄비에다 그것을 전부 담고 물을 잠길 정도로 붓고 끓였다. 한참 끓였는데 딱딱한 것이 풀리고 범벅이 되었다.
나는 더욱 끓였다.
범벅이 죽이 되고, 죽이 다시 찹쌀떡이 될 지경까지 갔다.
나는 다시 물을 좀 더 붓고 끓였다.
드디어 찹쌀떡은 단팥죽이 되었다.
떡에 묻은 설탕이 녹아서 단맛이 나고,
떡 안에 든 팥이 풀어져서 팥죽이 되었다.
달짝지근한 범벅이 된 단팥죽을 먹고 학교에 갔다.
그것이 소문이 났다. 이재오식 단팥죽이라고......
집 나가면 역시 고통스러운 것이 밥이다.
( 계속 )

고진감래라는 말이잇지요!
객지 생활을 잘하면 아름다운추억이돼요!
재오짱 미국생활이 아름다운추억이 됄거에용!!